바쁜 한 주였다. 보통 “바쁘다”는 기준이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내게 있어서 바쁘다는 것은 점심을 챙겨먹지 못할 정도로 꾸준하게 일이 이어지거나 시간이 걸리는 일들의 연속을 말한다. 하루에 한 두번 일이 있어 나가는 것을 바쁘다고는 할 수 없고, 최소 세 번 이상 일이 있고 그것도 계속해서 이어져 밥 먹거나 쉴 시간이 없으면 바쁜 날이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일요일 하루를 제외하고 바쁜 한 주 였고, 특이하게도 모티스 볼트, 그러니까 래치형 latch 모티스가 아니라 상가나 사무실 등에 쓰는(알미늄 문틀과 유리문) 모티스 관련 일이 몰렸다. 보통 1년에 몇번 정도 있는 일인데 한 주에 여러 건의 작업을 했으니 특이할 수 밖에.

모티스는 mortice라고 하며 문의 앞뒤가 아니라 옆면을 통해서 분해 조립을 하는 제품을 가리킨다. 블로그에서도 수십번 이상 소개했던 내용으로, 장점이라면 매우 안전하고 여러 가지 기능을 약간의 설정이나 변경만으로 구현 가능하지만, 치명적으로 일단 고장이 나면 매우 골치아픈 상황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문이 잠긴(혹은 닫힌) 상태로 고장이 나버리면 문을 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애시필드 Ashfield, 올림픽파크 Olympic Park, 피어몬트 Pyrmont에서 총 4개의 모티스를 다루거나 교체했다. 모티스 볼트는 볼트의 길이에 따라 22mm와 36mm가 있고, 옆으로 밀어서 여는 슬라이딩에 쓸 수 있는 고리 hook 방식의 28mm를 포함해서 총 세 가지다.(흔하지 않음) 거래하는 세 회사에서 모두 판매하지만 약간씩 크기와 특징, 구조 등이 달라서 저마다 특징이 있다.

너무 오래된 제품은, 꼭 모티스가 아니더라도 전체를 교체하는 것이 유리할 때가 많다. 먼지와 물기, 벌레 등 찌든 때가 있어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고 심지어는 분해도 어려우며, 열쇠나 실린더만 바꾸는 비용에 비해 전체를 교체하는 것이 (작업도 쉽고) 비용면에서도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한 곳에서 모티스를 두 개 교체했는데, 하나는 너무 오래되어 찌들어 나사도 풀리지 않았다. 오랫만에(?) 그라인더로 양쪽 실린더를 잘랐지만 그래도 빠져나오지 않아 옆면 틈으로 그라인더를 이용해서 자르고 꺼내고 하면서 거의 30분 정도를 쓴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어려운 제거 작업은 별도의 비용이 있지만 이번에는 청구하지 않았다.

나무 문과 마찬가지로 알미늄 문도 너무 오래되면 경첩(hinge)이 늘어지거나 문이 움직여서 닿는 면이 생기게 되고 문이 잘 열리고 닫히지 않는다. 잠금 장치는 후순위, 문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때는 먼저 문을 손본 후에 나머지를 작업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깔끔하게 작업을 하더라도 나중에 문을 조절해서 위치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잠금 장치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거나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년에 몇번은 영업을 시작하려는데 문이 안 열려서(잠금 장치 고장, 특히 모티스 볼트) 급하게 부르는 현장에 달려가곤 한다. 평소같으면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이지만 일단 문제가 생기면 잠금 장치가 매우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다. 그러니 늘 같은 말 반복 강조,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거나 불편하면 사람을 불러서 서비스를 받거나 직접 점검할 것을 권한다. 그것이 비용도 아끼고 작업 효율도 올리고 경제적으로 사는 방법이니까. *



꽤 오랫동안 현지 고객들을 대상으로 일을 해오며 이제는 거의 40% 정도가 현지인들 위주의 고객인지라 한편으로는 고마우면서도(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시장 확보) 다른 한편으로는 가끔 발생하는 전형적인 현지인의 사고 방식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오늘은 그 한 가지 사례.

듀랄 Dural의 한 고객이 열쇠를 바꿔야 한다고 연락을 해왔는데, 대화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아 연세가 지긋한 분으로 보인다. 주소를 받아 방문해보니 분명 “일반적인 잠금 장치”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오래된 구형 모티스 장치다. 최근에는 전혀 쓰이지 않는(신규 주택이나 문에서) 장치지만 여전히 제법 보급되어 있어 도매업체마다 저가형 중국산 브랜드를 통해서만 생산을 유지하고 있는 제품으로, 당연히 열쇠만 교체나 변경은 불가능한 장치다. 보통은 고객들로부터 작업 전 사진을 받아서 필요한 사항을 확인 후 방문하지만 나이가 많은 고객들이나 사진 촬영 등이 불편한 경우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방문을 하는데 이번에도 시간만 낭비하고 일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열쇠 변경은 불가하고 모티스 자체를 교체해야하며 크기가 약간 달라서 필요에 따라 나무를 깎거나 하는 추가 작업이 필요할 수 있음을 고지하고, 필요한 개수에 맞춰 최종 확인 후 재방문하기로 했다.

며칠 후 제품을 수령해서 다시 방문해서 작업을 진행하는데, 현관문에 달린 손잡이가 너무 무거워서 문제가 생겼다. 바깥쪽은 문제가 없지만 안쪽 손잡이 내부의 스프링이 부러져 자동으로 손잡이가 올려지지 않는 탓에 래치 latch라고 부르는 부품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 상태가 되어 문을 닫은 후 반드시 손잡이를 직접 올려줘야 하는 상황이다. 예전 제품은 유럽산(영국)으로 품질이 좋아 스프링도 강해서 손잡이 스프링에 관계없이 어느 정도는 올려줬는가 하면 요즘 제품은 중국산에 원가 절감을 위해 스프링 세기도 약해서 그렇게 안되는 것으로 설명을 해주었지만 뭔가 불만족스러워하는 고객. 물론 나로서는 최대한 해결을 해주고 싶지만 제품 자체가 그렇게 나오는 것은 해결이 안되는데다, 손잡이 스프링이 부러진 것은 현재 일과는 또 무관하게 고객 쪽에서 해결해야할 사항이라 마땅한 답이 없다.

위에 간단히 적었듯이 요즘은 전혀 쓰지 않는 장치다 보니 겉에 붙이는 손잡이만 따로 구하는 것도 불가능이고 특히 같은 모양은 구할 수가 없다. 비용이 들더라도 가능한 일이라면 진행을 하겠지만 불가능한 상황은 아무리 전문가라 해도 해결이 안되는 것. 상황을 설명해주고, 정문의 결과가 불만족 스럽거나 싫으면 더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모두 이해했고 나머지도 해달라고 해서 진행. 최초에는 7개의 모티스와 2개의 모티스를 각각 같은 열쇠로 해달라 해서 9개를 준비했지만 다시 살펴보더니 6개와 3개의 모티스를 같게 해야 한다고 해서 진행 불가. 그 중에서도 몇 개는 하지 않겠다 해서 결국 9개의 제품을 준비해 갔지만 3개만 진행하기로 했다. (주문한 제품은 어쩌누? @.@)

작업을 모두 마치고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왔다. 현관 손잡이가 올라가지 않아 문제가 되니 해결해 달라는 것. 이미 설명했는데? 스프링이 고장나서 안되는 문제라 방법이 없다고 하니 그래도 해결해 달라고 한다. 예전에는 훨씬 더 나았다는 것. 그러나 이번에 모티스 자체를 바꾼 것이라 예전에 잘 되었던 것과는 무관하게 현재는 안되고 그에 대해서는 설명을 했음에도 막무가내로 해결을 해달라고 한다. 음 마음이 불편해지네…

다시 며칠 후에 방문을 했다. 제품을 다시 분해하여 하나씩 확인하면서 조립해 보았지만 안쪽 손잡이의 스프링이 부러진 것은 해결이 안된다. 모티스 자체 스프링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손잡이의 스프링이 유지가 되는 바깥쪽은 손잡이를 내렸다 놓으면 자동으로 올라가는데 안쪽은 아무리 해도 안된다. 그 때 안쪽에서 뭔가 부품을 가져오는 고객. 자신이 오래전에 구입해 두었다 하면서 둥근 형태의 스프링을 보여준다. 그것을 장치에 끼우면 된다고. 무슨 말이지? 도저히 맞지 않는 그 부품을 모티스에 끼운다고?

확인을 위해 바깥쪽 손잡이를 완전 분해해서 살펴보던 중(스프링 교체 가능 여부 확인) 그 내부 스프링이 고객이 가져온 것과 같은 모양임을 발견, 실은 현재는 구입이 어려운 이 스프링을 이 고객이 오래전에(아마도 5-10년 이전) 구해 두었고 안쪽 손잡이를 수리할 수 있다고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귀가 잘 들리지 않고 기억력도 좀 쇠퇴한 상태의 아주 나이많은 서양 할아버지 고객이다. 어쨌든 모티스가 아니라 손잡이를 수리해보기로 하고 전체 분해 후 한참 만에 스프링 교체, 동작이 완벽하다. 이렇게 해서 고객의 불만 해결. 원칙적으로는 이렇게 손잡이를 수리해주는 수고비를 받아야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그럼에도 세번이나 방문!!!) 애초에 손잡이 스프링이 있었으면 왜 지난번에 이야기를 안했는지는 의문이지만, 부인의 말처럼 naughty boy인지 아니면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인지, 나로서는 시간을 내어 재방문해야만 했던 일이다.

모든 일의 결과가 만족스럽고 완벽하면 좋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현실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거나 안되는 일들이 이다. 물론 전문가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안되는 일을 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번에도 고객이 보유하고 있던 스프링이 없었다면 사실 문제 해결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래서 애초에 계속 진행할건지 취소할건지를 묻고 진행했던 것이고 모두 동의했음에도 나중에 가서 불만을 제기하면 일을 사람으로서 참 당황스럽기도 하다. 운이 좋았던 일이지만, 이렇게 억지스럽게 불만을 제시하는 일들은 아예 시작을 하지 말라는 지인의 이야기가 어쩌면 더 현명한 선택일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