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나이가 들어가는 일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는 아니지만, 나의 생각은 지금 그대로, 좀 더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가진 상태로, 곁에서 느껴지는 모습은 조금씩 세월에 빛바랜 외모로,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그 생각에 시간의 경험을 더해 사회적으로 바라보여지는 “숫자로서의 나이”만 변하며 인생이 그렇게 흘러간다.

나이가 더 들어 중장년을 넘어 노년이 되면 기력도 떨어지고 사회에서는 거의 밀려나게 되며 이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짧게, 어쩌면 인생을 살며 한번이라도 했을지 모를 죽음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며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인생은 참으로 짧고 그것을 너무 뒤늦게 깨닫는 것 조차도 인생의 과정이 아닐까.

이사를 나와서 이제 자주 보기도 힘든 할머니를 거의 한 달에 한 두번 보러 간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는 나도 깜짝 놀라는 상황을 접했다. 차고에 세워둔 할머니의 차가 상당히 심하게 파손된 것.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마침 할머니는 외출중이라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다시 방문해서 잠깐 대화를 해보니, 라운드어바웃(round about) 그러니까 원형 교차로에서 기다리던 중 반대편(호주 기준 우측)에서 차가 오지 않아 바로 출발을 했는데 그 앞의 차가 출발하지 않고 있어서 그 뒤를 박았다는 것. 보통 차를 출발하면 가속을 하게 되니 그 힘이 온전히 앞차에 전해지며 내 차의 보닛이 찌그러질 정도의 충격이 생긴 듯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상인 상황은 분명 아니다.

할머니는 왜 앞차가 가야 하는데 안 가서 사고가 생겼냐며 불평을 하시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이는 100% 할머니의 실수일 수 밖에 없다. 운전을 할 때는 차가 오는 방향(우측)은 물론이고 앞과 다른쪽 옆 등 모든 사방을 살피면서 해야 하는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나이가 들면서 집중력이 떨어진 결과다.

당분간은 보험 회사에서 빌려주는 차를 쓰고 있지만 차가 없이는 생활이 안되는 호주이기에 급하게 다른 차를 구해야 했다. 파손된 차는 이미 오래되어 보험 처리를 해도 비용이 너무 들어 회사에서는 폐차로 결정되었고 시장가 정도를 받는 선에서 보험 처리가 마무리 되면 할머니는 새로 차를 구해야 한다.

매번 남은 인생 벤츠 하나 뽑아서 타보는 것 어떠냐고 제안하곤 했는데 아껴쓰는 것이 생활인 할머니 성격에 그렇게 하지는 않으실테고, 그냥 적당한 중고차 하나 사서 타려는 계획이라 해서 차 구입을 도와드리기로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번 암 재발 진단 후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가끔씩 아파서 드러눕기도 하고 또는 병원 방문이나 기타 일정으로 시간이 맞지 않기도 하고…

할머니를 알고 지낸 것이 벌써 13년이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그 동네에 가서 살게 되었고 둘째가 태어나기 전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벌써 13년. 내 가족 특히 아이들에게 너무 잘 대해주는 할머니는 내게도 가족같은 분인데, 언제나 활기차고 건강하던 그 모습도 세월이 가면서 바뀌어 이제는 언제 어느 시점에 만나더라도 늘 지쳐있고 나이들고 힘없는 노년의 모습 밖에 남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나 살아계실지 모르지만 힘들지 않게 아프지 않게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지내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