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외국에 살고 있어 가급적이면 한국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글을 쓰지 않으려 하지만 지난 한 주는 계엄 사태 및 탄핵 투표 문제로 상당히 시끄럽고 또 그만큼 마음이 불편했던 시간들이라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간단히 결론을 말하자면, 이번 사태는 결국 한국 정치의 현실, 경제 문화 외교 등 다양한 방면에서 세계 선진국으로 올라선 한국의 위상이 “후진 정치”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안타까운 현실이다.
돈과 정치, 그리고 종교. 모든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주종 관계가 거꾸로 되어버린 흔한 현상의 예라 할 수 있겠다. 예전에야 신분제가 있는 시대였지만 민주주의가 도입된 현대 사회에서, 정치란 다수를 대표하는 사람을 뽑아 지역 혹은 나라의 일을 맡기는 과정인데,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를 잘못 생각하고, 아니 심지어 일부 시민들까지 정치인은 타인의 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상급자”로 착각하는 듯 하다.
외국에 살면서 상당히 놀란 것은 티비를 틀면 가끔 나오는 정치인에게 절대로 “Sir”를 대하듯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친한 친구나 연예인을 만나는 것처럼 동등하고 똑같은 위치와 입장에서 대화를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 적어도 이 호주에서의 현실이다. 한국이라면? 하다 못해 지방 의원만 되어도 마치 그 지역 주민들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또 사람들도 그렇게 여긴다. 이런 계급적 차이가 왜 중요하냐면, 정치를 하는 이들이 맡겨진 “일”을 하지 않고 권력에만 취해 개인적 이득과 권력 행사에만 빠지기 때문이다. 잘하면 칭찬하고 잘못하면 쫓아내는 것도 모두 표를 가진 사람들의 권한이지만 그들은 투표시에만 겸손해질 뿐 항상 타인의 위에 서려 한다.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한국 정치의 현실은 수십년이 지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정치판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주권을 가진 이들이 현명하게 대처하고 올바른 사람을 골라 함께 발전해가는 사회를 만들도록 이끌어야 하지만, 유독 한국 사회는 일제 치하, 남북 전쟁, 현대 정치의 여러 비극들을 안고 가면서 경제 발전과 함께 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처진 듯 하다. 조금만 틀어져도 “빨갱이” 소리를 하며 이상하게 지켜보는 시대가 있었나 하면 사회 곳곳에도 여전히 일제의 잔재가 남아 그 독을 퍼뜨리며 혼을 빨아들이고 있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면서 말이다.
혹자가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정치판에 기웃거리지만 진정 자유와 민주주의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를 욕하면 잡혀가는 시대가 있었나 하면, 빨갱이라 뒤집어 씌워 죽음을 선고하는 시대도 있었다. 지금의 우리가 정치를 비판하고 가볍게 농담할 수 있는 이 기반은 모두 선배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진 고마운 열매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계 어디서든 마찬가지겠고 호주에서도 역시 선거철이 되면 가급적 예전에 했던 이들이 우세하고 또 특정 인물이나 정당을 지지하는 골수층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더 많은 다수의 사람들은 정치인의 사상과 행동, 그들이 만들어낸 현실을 바탕으로 평가하여, 필요하다면 물갈이를 한다. 정치인들 역시 사소한 비리나 잘못된 행동에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사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결국 주권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국의 20년 후는 변했으면 좋겠다. 지금의 젊은 층이 사회 중심이 되는 그 시점에는 지금보다는 더 깨끗한 모습으로, 정치는 일 잘하는 사람이 나와서 서로 경쟁하는 그런 시대였으면 한다. 자기 욕심을 채우고 권력에 집착해서 남을 휘두르고 온갖 범죄와 비리를 저지르고도 웃으며 주권자를 깔보듯 하는 이들이 과연 나와 지역과 심지어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일지, 그리고 각자는 주권자임을 잊고 그런 위세에 눌리거나 끌려 자녀와 후손들에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한번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오늘은 또다른 날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