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 브리즈번(이하 블번)으로 이사를 하고난지 1년이 넘었다. 시드니에서 꽤 오래 살았고 이사도 여러번 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블번으로의 이사는 정말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고 힘들었으며 특히 이사 당일 많은 비가 오는 속에 초고속 질주를 하며 블번으로 달린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거리가 너무 멀어 점심에 출발하면 자정이 되어야 도착한다는 부담으로 어쩔 수 없었지만…
앞으로의 인생에 또 얼마나 이사를 자주할지는 모르지만, 현재 살고 있는 집에 들어온지도 1년이 되어가고, 가족들을 보러 블번에 10회 이상 방문하면서 보니, 약간의 장단점이 공존하는 듯 해서 남겨둔다.
블번은 한국의 제주도 이상으로 훨씬 더 적도에 가까운 지역이다. 연중 따뜻하고 눈이 거의 오지 않는 제주를 지상낙원으로 생각하지만, 블번은 그보다 훨씬 따뜻하고 하나의 큰 섬이라는 호주의 특성답게 전반적으로 온호환 호주 날씨에 더해, 겨울에도 봄처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곳, 그게 바로 블번의 모습이다. 지인의 이야기로는 블번 사람들은 겨울을 가장 좋아하고 즐긴다는데 약간 쾌적하고 따뜻하고 운동이나 야외 활동을 하기에도 아주 적합한 그런 날씨가 이어지니 겨울이 싫을 수가 없는 것이다. 너무 추워서 난로를 켜야 하는 날은 거의 없고 밤에 쌀쌀함이 있지만 적당한 침구와 난방을 쓰면 충분한 수준인 것.
반면 최근 몇달 사이에 느낀 블번의 여름은, 특히 이상 기후가 심해지고 있는 요즘, 한국의 덥고 습한 그 날씨를 연상시키는 불쾌함이 있다. 바다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라 바람이 상쾌하게 불지만, 구름이 끼고 흐리면서 더운 날은 바람도 불지 않거나 끈적하고 집안에서도 답답함을 느낀다. 블번의 한여름은 그야말로 타는 듯 더워, 저 멀리 서호주의 40도를 넘는 여름과는 또 비교할 수 없는 끈끈하고 불쾌한 시간들이라 하겠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도 더위가 가지 않아 따듯한 공기가 실내를 맴도니 어느 정도의 냉방 시설을 갖추고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 그 덕분에 일년 내내 에어콘을 이용하는 전기요금 부담은 커진다. 여기서 다행히, 솔라를 설치한 혜택은 많이 보고 있다.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블번 사람들의 성향도 시드니와는 많이 다른 듯 하다. 서양 사람들조차 성격이 너무 급하고 전화 상담을 해도 빨리 말하고 빠른 결론을 원하며 그다지 기다리지 않고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하는 성향이 대부분이다. 같은 호주땅이지만 느리게 말하고 오래 기다려주고 포용하는 시드니와는 또다른 모습이랄까.
일부이긴 해도 자산의 규모나 생활 수준도 다른 듯 하여 시드니는 어떤 결과를 만들기 위해 조율하거나 협의하는 편인데 반해 블번은 비용에 무관하게 그냥 진행하거나 반대로 약간의 비용 부담만 느껴져도 협의나 조율보다는 그냥 포기하고 잊는 듯 하다. 고객의 성향을 보니 지난 6개월간 느낀 점은 그러하다. 이는 비교적 한국과 비슷한 성향의 시드니 사람들과 달리, 일을 하느냐 마느냐로 간단하게 결론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훨씬 더 호주다운 방식이랄까. 가격 협상과 칭찬 비평에 집중하는 시드니와 달리 블번은 대체로 만족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아마도 인구가 더 적고 일할 사람이 훨씬 더 부족한 지역에서의 일반적 성향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블번은 물가가 저렴하다고 느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느낌이다. 일할 사람이 적다 보니 간단하고 사소한 일에도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고, 그마저도 제대로 실력을 갖춘 이들보다는 입으로(!) 영업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 시드니는 많은 인구 중에 사기꾼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는 통계적 상황에 따른다면, 블번은 전반적으로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고 일 적당히 하고 많이 받으려 하는 사람도 상당 수 있다는 느낌이다. 빌더를 구해봐도 간단한 가드너를 구해봐도, 일을 제대로 하겠다는 프로의식보다는 바쁜 중에 시간 쪼개어 적당히 하고 돈은 확실하게 받으려는 사람이 다수라는 점에 놀라게 된다. 에어태스커나 하이페이지 등을 통해 사람을 구해보면 시작 가격부터 너무 높고 일이 조금만 더 힘들어지면 훨씬 더 비싸게 부르고 아니면 아예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더운 날씨에 힘든 일 안하려는 것은 이해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의 치열한 시장 경쟁 보다는 부족한 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배짱 영업이나 의식없이 적당히 먹고 살려는 이들도 상당 수 있는 듯 하여 아쉬움이 있다.
반대로 제대로 전문적인 면을 갖추면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시장이라는 점도 되겠지만, 블번은 앞서 소개한대로 사람들이 너무 급하고 빨리 결론짓기를 원하며 시드니에 비해 타 인종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배타적인 부분이 있어 정착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듯 하다. 하다 못해 교민 사회에서도 원래부터 부족한 인력을 인식해서인지 한인 외인 가리지 않고 일을 맡겨서 쓰는 경향이 있어 한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한인 사회에 정착하기(비지니스) 쉬운 점은 없어 보인다. 다시 말해서 블번에서 제대로 살려면 어느 정도의 영어를 바탕으로 현지 사회에 정착할 각오는 해야 한다는 말.
시드니의 지역마다 많이 늘어난 식당 마트 병원 등과 달리 블번은 식당 등의 수가 매우 제한적이라 맛집이라고 가보면 별볼일 없거나 서비스가 별로이고 거의 고자세로 장사를 하거나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도 단점이라 하겠다. 앞으로의 인구 유입이 되면 제대로된 경쟁이 될까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대형 매장을 가봐도 작은 식당을 가봐도 그냥 그런 정도의 수준에, 사람들은 만족하고 행복해한다. 반면에 사람들은 특히 쇼핑 센터에 차고 넘쳐서 늘어나는 인구를 과연 이 작은 도시가 미래에도 감당할 수 있을지 부담스럽다. 큰 쇼핑센터가 많지 않아 대부분은 단층에 넓게 퍼진 주차장과 쇼핑 센터로 구성되어 있고, 그렇다 보니 여러 층으로 된 복합 쇼핑몰에는 엄청나게 사람이 몰려 박터지게 돈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 집이든 학교든 항상 모든 일의 중심은 쇼핑센터 근처가 가장 인기있고, 지역 개발에도 이런 쇼핑센터의 입주가 가장 큰 뉴스거리라 하겠다.
블번 도시 자체는 작지만 골드코스트와 북쪽의 선샤인 등 꽤 넓은 지역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통합 대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상태라 전체 면적 대비 인구는 여전히 적은 편이어서 도로는 쾌적하고 특히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의 산길을 다니다 보면 무서울 정도다. 그러나 도시 자체의 중심은 항상 M1 이어서, 출퇴근 시간에 엄청 막히고 사고라도 나면 도시 전체가 마비되는 치명적 단점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의 도시 개발은 우회하는 여러 주요 도로의 개발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복합 쇼핑몰도(인구 증가만큼) 여러 지역에 나누어져서 인구 분산을 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시드니가 파라마타 강을 따라 바다로 이어지는 형태이고 바닷가에 도심이 자리하는 것과 달리 블번은 강 자체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누어져 개발되었기에 특성은 완전히 다른 듯 하다. 파라마타 강 보다는 동부 바다쪽이 더 발달한 시드니와 달리 블번은 골코를 제외하고는 블번 강 하류에 따로 관광지나 해변이 없어 강을 중심으로만 되어 있어 도시의 특성 자체가 다르다. 이는 마치 서울이 한강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개발된 것과 같이 블번은 강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지는 도심이 전부고 동부 해안가가 더 발달하거나 비싸거나 인구가 몰려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 강을 따라 선착장이 있어 도심을 오가는 사람들이 대중 교통으로 배를 이용하기에는 매우 편리하게 되어 있다(city cat).
앞으로의 미래는 기후 변화와 인구 증감, 그리고 산업화의 미래까지 더해 도시가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지만, 경제적 여유를 갖고 따뜻하게 그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며 살고자 한다면 블번은 분명 매력적인 도시인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시원하게 에어컨 틀고 적당히 일하면서 살 수 있다면 말이다. 반대로 밖에서 일년내내 땀흘리며 바쁘게 뛰어다녀야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매우 힘든 인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부족한 인력 시장에서 충분히 영업과 기술로 인정받을 자신이 있다면 도전해볼 가치는 있는 일이겠고.
시기적으로 거의 10년 정도의 과거를 돌아보는 느낌으로 블번에 정착을 시도한다면 시드니에서의 경험들이 분명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길을 달리면서도 스쳐 지나는 텅빈 벌판과 산들이 아직은 시골 마을 같은 순박한 느낌을 주지만 10년 후에는 분명 좀 더 달라진 세련된 모습으로, 어쩌면 통합 대도시의 꿈을 이루어 쾌적하면서도 체계가 잡힌 도시의 삶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